군용기 기반의 기종 도입(수리온 기반의 흰수리 등)으로 인해,
군 특유의 작전 절차가 민간 법령 및 국제 글로벌 표준 규정보다 우선시되거나 표준인 것처럼 굳어지는 현상은
항공 안전 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라 생각됩니다.


# 관행이 규정을 앞설 때: 항행등(Position Light) 운용의 미스매치
항공기의 모든 등화(Light)는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다.
하늘과 지상이라는 거대한 3차원 공간에서 전 세계 조종사들과 관제사들이 약속한 ‘시각적 언어’다.
그렇기에 이 언어는 철저히 정형화된 국제 표준과 법령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일부 민간 및 관공선 헬기 운용 현장에서는 과거 군(軍) 전술 비행의 유산이 마치 글로벌 표준 규정인 것처럼
오인되어 당연시되는 기이한 관행이 발견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항행등(Position/Navigation Light)의 ‘Flash(섬광)’와 ‘Steady(고정)’ 전환 운용이다.

# 군사 작전의 '신호'가 민간의 '표준'이 될 때의 오류
과거 UH-60 블랙호크나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수리온(KUH-1) 계열의 항공기를 몰던 군 출신 조종사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지상 점검표(Checklist) 절차가 있다. 지상 이동(Taxi) 중에는 항행등을 ‘Flash’ 모드로 켜두었다가,
활주로 진입 후 이륙 준비가 완료되면 ‘Steady’ 모드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이 절차의 목적은 명확하다. 무선 침묵이 요구되거나 편대 비행이 잦은 군사 작전 환경에서,
"우리 항공기는 이제 이륙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후속 편대기나 통제관에게 시각적으로 알리기 위한
‘군 전술적 약속(Tactical Procedure)’이다.
문제는 이 군용 기종을 베이스로 도입된 관공선 헬기(해경 ‘흰수리’ 등)와 민간 항공업계로 군 출신 조종사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발생했다.
군에서 몸에 밴 관행이 민간 조종사 점검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이제는 이것이 항공안전법상 정당한 규정인 것처럼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 항공안전법과 ICAO 규정이 말하는 진실
민간 항공을 구속하는 국내 항공안전법 및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규정 어디에도
항행등을 지상에서 깜빡이게(Flash) 두라는 조항은 없다.
오히려 규정은 정반대를 가리킨다.
>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제120조(등화의 점등)
> 항공기가 야간에 공중·지상 또는 수상을 항행하는 경우 및 비행장 이동지역 안에서 이동하는 경우, 항공기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하여 항행등(우현등, 좌현등 및 미등)을 켜야 한다.

국제 표준에서 항행등은 ‘고정된 밝기의 연속적인 등화(Continuous light)’, 즉 Steady 상태가 기본 전제다.
좌측 적색, 우측 녹색, 꼬리 백색의 불빛이 끊김 없이 켜져 있어야만, 타 항공기가 이 불빛의 상대적 위치를 보고
"저 항공기가 어느 방향으로 기수를 틀고 있는지"를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직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항행등을 Flash 모드로 운용하게 되면, 주변 항공기나 관제사는 순간적으로 깜빡이는 불빛의 잔상 때문에
상대 항공기의 정확한 자세와 이동 방향을 오인할 위험이 커진다.

# 엉뚱한 등화에 부여된 역할
더욱이 지상 이동 중 항공기의 움직임을 알리는 ‘경고’의 역할은 항행등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강력한 붉은색 빛을 뿜어내는 충돌방지등(Anti-Collision Light, Beacon)의 역할이다.
민간 규정상 엔진이 켜져 있거나 움직이는 항공기는 주·야간을 막론하고 충돌방지등을 켜서 자신의 위험성을 알려야 하며,
항행등은 야간에 항공기의 형태와 방향을 유지해 주는 보조적 수단일 뿐이다.
결국 지상에서 항행등을 Flash 모드로 두는 것은 민간 기준에서는
"규정된 등화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운용하여 주변에 시각적 교란을 주는 행위"에 가깝다.
이륙 준비 완료 신호는 무선 교신(ATC)과 기장의 육안 확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민간 항공의 표준 프로세스다.

# 관행의 답습을 멈추고 표준으로 돌아가야 할 때
국산 수리온을 기반으로 한 흰수리 헬기 등이 민간 및 관공선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하드웨어(기체)가 군용 마이너 체인지라고 해서, 소프트웨어(운용 절차)까지 군사 작전 개념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항공기는 군용기든 관공선기든 예외 없이 국내 항공안전법과 글로벌 표준의 통제를 받는다.
‘늘 그렇게 해왔으니까’, ‘군에서는 당연한 거였으니까’라는 안일한 관행은 항공 안전의 가장 큰 적이다.
지금이라도 각 운용 기관은 조종사 점검표를 재검토하여,
국제 표준에 맞지 않는 항행등 Flash 운용 절차를 Steady 점등으로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군의 ‘작전’과 민간의 ‘비행’은 엄연히 분리되어야 하며,
최상위 가치는 언제나 법과 규정에 기반한 표준화(Standardization)여야 한다.

* 관련근거
1. 국내법 근거 (대한민국 항공안전법)
국내 항공안전법은 항행등의 '오인 가능성 차단'과 '상시 점등'을 명확히 법으로 강제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임의로 Flash 모드로 바꾸어 신호로 쓰는 행위는 시행규칙 제120조 제3항(항행등으로 오인될 수 있는 다른 등불 점등 금지)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1)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제120조 (항공기의 등불)
      * 제1항: 법 제54조에 따라 항공기가 야간에 공중·지상 또는 수상을 항행하는 경우와 비행장의 이동지역 안에서 이동하거나 엔진이 작동 중인 경우에는 우현등, 좌현등 및 미등(이하 "항행등"이라 한다)과 충돌방지등에 의하여 그 항공기의 위치를 나타내야 한다.
      *제2항: 야간에 사용되는 비행장에 주기(駐機) 또는 정박시키는 경우에도 항행등을 이용하여 위치를 나타내야 한다. (조명 시설이 있는 경우 제외)
      *제3항: 항공기는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위치를 나타내는 항행등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는 다른 등불을 켜서는 아니 된다.
      *제4항: 조종사는 섬광등(Anti-collision/Strobe 등)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장애를 주거나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눈부심을 주어 위험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에는 섬광등을 끄거나 빛의 강도를 줄여야 한다. (※ 섬광등에 대해서만 소등/조절 예외를 인정할 뿐, 항행등은 예외가 없음)

2. 국제법 및 해외 표준 근거
국제 기준에서는 항행등(Position/Navigation Light)의 정의 자체를 'Steady(고정등)'로 규정하고 있으며,
깜빡이는 등화는 오직 충돌방지등(Anti-collision Light)에만 허용합니다.
  1) ICAO (국제민간항공기구) 협약 부속서
국제 항공의 헌법과도 같은 ICAO Annex 2 (Rules of the Air)와 Annex 6 (Operation of Aircraft), 그리고 기술 기준을 다루는 Annex 14에서는 항행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항행등의 정의: 주변 항공기가 상대 기체의 비행 경로(Trajectory)를 오인 없이 파악할 수 있도록 "연속적이고 고정된 광도를 가진 등화(Continuous, steady intensity lights)"여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배경 이유: 등화가 깜빡거리면(Flashing) 순간적인 시각적 공백이 생겨 상대 조종사가 기체의 정확한 '자세(Attitude)'와 '진행 방향(Heading)'을 인지하는 데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 미국 FAA (연방항공청) 규정 (FAR)
국내 항공법의 모태이자 글로벌 표준 역할을 하는 미국 연방항공규정 FAR(Federal Aviation Regulations) Part 91 및 조종사 정보 매뉴얼 AIM(Aeronautical Information Manual)의 규정입니다.
    *FAR Part 91.209 (Aircraft Lights) & AIM 4-3-23
    *FAR 91.209(a): 일몰부터 일출까지 모든 항공기는 반드시 항행등(Position Lights)을 점등해야 한다.
    *FAR Part 27 / 29 (헬리콥터 인증 기술 기준): 항행등(Position Light) 시스템은 지정된 각도 내에서 속뺌 없이 계속 켜져 있는 고정등(Steady Lights)으로 작동해야만 형식 증명(Certification)을 받을 수 있다.
    *AIM 4-3-23 (Use of Aircraft Lights): 조종사는 지상 및 공중 운항 중 주변 조종사에게 혼란을 주지 않도록 등화 고유의 목적에 맞게 운용해야 한다. 섬광(Flashing) 기능은 오직 지상 조업사 경고 및 공중 충돌 방지를 위한 Anti-collision Light System(Beacon/Strobe)에만 허용된다.


* 요약
1. "법은 항행등의 ‘Steady(고정)’ 상태를 기본 전제로 만든 것이다."(ICAO/FAA 기술 기준)
2. "지상에서 항행등을 깜빡이게(Flash) 조작하는 행위는, 타 조종사에게 등화 오인을 유발하므로 국내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제120조 3항 위반 소지가 있다."
3. "군에서는 '이륙 준비 완료'라는 전술 약속을 위해 법령 대신 부대 절차를 우선했으나, 민간/관공선 세계에서는 법령이 최상위 가치이므로 칵핏 점검표(Checklist)를 법에 맞춰 Steady로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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